<본문>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내용>
1. 교회의 축복
1) 진실한 사람
① 정확한 진단
어느 지역에 성당이 있는데 성도들이 신부들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그런데 고해성사 중에 어떤 분이 신부에게 와서 “신부님, 저는 간통을 했습니다.” 고백하였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다른 성도도 “제가 간통을 했습니다.”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다. 간통했다는 고해성사가 그 성당에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성당의 신부가 자꾸만 듣다 보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그러니까 고해성사를 한 사람에게 “앞으로는 간통했다고 하지 말고 미끄러졌다고 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성도들이 와서 “신부님, 저는 미끄러졌습니다.” 이런 고백이 보편화된 것이다. 그러다가 신부가 다른 곳으로 가고 새로운 신부가 오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신부는 그 내막을 모르니까 성도들이 고해성사를 하는데 “신부님, 저는 어젯밤에 미끄러졌습니다.” 그러는 것이다. 보니까 시장 사모님이 “신부님, 저는 지난번에 3번이나 미끄러졌습니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가 ‘아, 저 다리를 고쳐야 되겠구나!’ 생각을 하고 시장님에게 가서 “시장님, 우리 지방의 다리가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자꾸만 사람들이 미끄러졌다고 합니다. 아마 다리를 고쳐야 될 것 같습니다.” 하니까 시장님이 “그 다리 튼튼하고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랬더니 신부가 “시장 사모님이 어제 세 번이나 그 다리에서 미끄러졌다고 합니다.” 시장은 무슨 말인지 모르잖아요?
죄를 추상화시키면 안 된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죄 중에 죄다. 사람들이 이것을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다. 사람들이 모른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속는 것이다.
② 진실한 사람
사람이 정말 진실하면 “아, 내가 죄인이구나!”깨닫고 고백한다. 정말 사람이 진실하면 내 힘과 노력으로 안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가진다.
만약, 불치병 환자들이 처음부터 불치병이다. 알면 해답이 있다. 죽든지 살든지 두 가지 밖에 없다. 그러면 ‘불치병’ 이란 것은 누구의 도움으로도 안 되기 때문에 포기하고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명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치병 환자를 잘 한번 보세요. 환자가 병원에 찾아가면 의사가 “이렇게 치료하면 되겠습니다.” 하면 그대로 한다. 그런데 의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불치병까지 치료가 되는가? 안 되니까 실컷 고생하고 돈 다 날리고 그 때쯤에 큰 병원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가면 의사 선생이 시키는대로 다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불치병이 치료가 됩니까? 안되니까 의사선생님도 포기합니다. 또 환자들끼리도 서로 통한다. “그런 병에는 어떤 의사가 잘 한다고 하더라.”, “그런 병에는 소똥에다가 기름 발라서 튀겨서 먹으면 좋대.” 정상적인 사람은 이해를 못한다. 나아보기 위해서 별별 노력을 다한다. 돈 다 날리고 아무 힘도 없을 때 포기한다.
우리 인생의 병은 불치병보다 더 심각하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그래서 사망이다.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 문제의 해결자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를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생명으로 옮겨지면 그 때부터 우린 풍성한 삶이 되어진다. 이것을 알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린 영원한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주님 앞에 맡기고 주님 앞에 참된 평안과 참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래서 나를 따라오라고 하였다. 사람은 주님을 따라오면 산다. 사람은 주님을 따라가면 산다. 자꾸만 불치병 걸렸는데 이것을 하면 나을 것이라고 이것저것 하다가 결국 망해서 인생 가는 것이다.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너희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저와 여러분을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밖에 없다. 혹시 우리에게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까? 주님이 담당하시고 주님이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정말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의지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소원
복음을 거부하고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이단이라고 한다. 그런데 1517년 루터라는 사람이 이단으로 정죄받았다. 이것을 보고 ‘누명쓴 이단’이라고 한다. 그것을 교회사에서는 종교개혁이라고 한다.
루터라는 사람이 신부인데 자기 자신은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성 베드로 성당을 무릎을 꿇고 기어 올라갔다. 그 당시에는 천주교에서는 예수 믿어서 구원 얻는 것이 아니고 선행과 공로와 고행을 해야 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루터는 그 교리대로 살아보려고 선행과 공로를 같이 곁들여서 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학자였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성경 어디에도 예수 믿어서 구원받지 우리의 공로와 선행과 고행이 구원의 조건이 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구나!”라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교황청에 알려졌다.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때 쯤에 하나님의 은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살아남고 피신이 되었다. 종교 개혁이다.
교회도 불행하게 죄를 지을 수 있다. 우리 인간의 불치병인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 인격을 전하고 사상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악한 죄이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 모르고 안 믿는 것이 죄입니까? 교회가 목사의 인격과 사상을 전하고 세상적인 것을 전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땐 아무 문제 없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큰 죄이다. 교회가 정말 인생의 불치병을 해결하는 복음의 본질을 설명해야 되지 교회가 신비주의를 말하고 율법주의를 말하고 사회운동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 보실때는 죄이다. 심지어 교회가 중세교회처럼 복음전하는 것을 막았다. 죕니다. 교회도 죄를 지을 수 있어요.
3) 교회의 축복
저는 하나님 은혜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제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예수를 전할 수밖에 없고 강단에서 예수 외에는 다른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결론이 나고 이렇게 살고 싶고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복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중세교회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부족해서 우리 인간의 선행과 고행과 노력이 덧붙혀 진다면 우리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다. 저는 이것을 믿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 밖에는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양양에서는 동해사라는 절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 “지금 동해사는 법비가 흐르고 있습니다.”라는 플랜카드가 붙혀있다. 저희가 성도와 함께 현장 다니면서 같이 가보면 다른 데는 비가 안 오는데 신기하게 거기에만 비가 뚝뚝 내린다.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말입니까? 그런다고 우리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또 어떤 지역에는 마리아 상에서 눈물이 흐른다고 한다. 사람이 만든 마리아 상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신기하죠. 그런데 어떻다는 말입니까?
사람이 참 어리석다. 신비한 것은 신비한 것이지 그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에 뭐가 있는 줄 안다. 예수님에게 감히 속이려 했던 사단이 무엇을 못하겠는가? 세상 임금으로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귀신이 무엇을 못하겠는가?
그리스도 붙잡으면 자유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우상에서 과학에서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하신다. 흑암의 나라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완전히 옮기셨다.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셨다. 뿐만 아니라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 그분이 그리스도이시다.
2. 응답하시는 하나님
1) 모세의 기도
① 백성들의 회개
백성들이 몰라서 하나님을 희미하게 알아서 우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백성을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이 나는 가지 않겠다. 백성들이 그 때서 마음이 슬퍼졌다. 약속의 땅에 가야 되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헛것 아닙니까?
이 때 백성들이 깨달았다. ‘그렇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가장 욕되게 하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을 했구나!’ 그래서 그 우상을 만들었던 장신구들을 다 빼버렸다. 내가 사단의 통로가 될 만한 것들을 다 없애버렸다는 말이다. 참 대단한 결단 아닙니까?
그리고 모세가 회막을 지어놓고 회막에 들어갈 때마다 백성들이 같이 회막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회막 앞에서서 하나님을 계속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였다.
여러분, 회개가 뭡니까? 눈물 흘리는 것이 회갭니까? 짬보들은 웃다가도 눈물 흘린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감정적인 것이 아니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하나님이 알고 자기 자신이 알고 다른 사람들이 안다. 그게 회갭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과거에 우상숭배했던 사람들이 회개하면 우상 다 버리고 제사도 안 지낸다. 그래서 전에 같이 제사지냈던 사람들이 “어, 저게 예수쟁이 되더니 제사 안 지내네, 우리와 같이 못 놀겠네” 하고 왕따시킨다. 그게 회갭니다. “나 예수 믿어 교회 다녀”하면서 같이 제사지내고 절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정말 여러분이 회개하면 핍박도 받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회개를 추상적으로 안다. 죄도 추상적으로 알고, 하나님도 추상적으로 안다. 전부다 아는데 희미하게 안다. 회개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시고 자신이 알고 다른 사람이 알아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회개라고 한다.
② 모세의 기도
13절에 보면 모세가 기도한다.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목이 곧은 이 백성, 정말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마음이 슬퍼할 뿐 아니라 장신구를 다 벗어던지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이게 모세의 기도다.
여러분,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 하나님과 방향이 맞아야 될 것 아닙니까? 모세는 이 백성들을 붙잡고 “하나님, 백성들이 주의 백성 아닙니까? 이 백성들이 잘못해서 우상을 만들고 우상 앞에 절했지만 그래도 이 백성들이 주의 백성 아닙니까?” 이게 모세의 기도입니다.
한 사람의 기도가 백성들의 불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돌이켰다. 그 증거로 14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이 안 간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친히 가게 하겠다. 하나님은 정말 생을 걸고 기도하는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의 회개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다. 모세의 중심을 아시고 내가 친히 갈 뿐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애통해 하는 너를 내가 쉬게 하겠다는 말이다.
2) 응답하시는 하나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악한 아비라 할지라도 자식이 달라고 하면 돌을 주겠습니까? 하물며 악한 자도 그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냐? 하나님은 분명히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시면 모든 문제는 끝난다. 다른 것은 다 부수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개하는 자의 회개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셔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
저는 이번 특별새벽기도를 마음 중심에 담고 기도하면서 분명 하나님께서는 이런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다. 특별기도 기간에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사건들은 다 좋은 것이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려는 사인이다. 혹시 이 기간동안에 억울한 일, 어려운 일, 실패하는 일이 생겨도 좋은 것이다.
목사님, 이런 논리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있다. 사도행전 16장에 바울이 아시아지방에 복음 전하러 가는데 길이 막혔다. 그런데 하나님이 막았다. 그 때 바울이 가만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분명히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때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 하나님이 나를 마게도냐로 인도하시는구나! 그래서 마게도냐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이 루디아다.
루디아가 치마만 입었지 통(그릇)이 큰 여자다. 바울 생애에 바울의 모든 경제를 감당할 만큼 통 큰 여자다. 루디아 집이 나중에 빌립보 교회가 되었다. 바울이 전도하러 가는데 길이 막혔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최고 좋은 응답이다. 루디아를 예비하시고 만나게 하셨다.
가장 복음을 잘 전한 바울이 아덴 지역에서 전도하다가 최초로 전도 실패를 했다. 그런데 그게 응답이다. 아덴 지역에서 실패해서 고린도지역으로 갔는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하셨다. 바울이 겐그리아지방에서 머리를 깍고 인생의 결단을 할 때 그 옆에 있던 사람이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이다. 바울이 로마에 끝까지 복음 전하는데 바울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어 놓을 만큼 생을 드릴 사람이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였다. 우리가 마음과 중심을 담고 기도하는데 일어난 모든 것은 좋은 일이다. 걱정할 것 없다. 죽으면 죽어버리면 되고, 망하면 망해버리면 된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지신다.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했는데, 믿습니까? 구체화하시길 바랍니다.
3) 내가 하리라
다 하나님이 하신다. 1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하나님이 하신다. 내가 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완벽한 것이다. 우리가 병이 생겨서 병원에 가서 많은 도움을 받지만 그 도움을 받으면 몸의 한 쪽 어딘가 손상을 받게 되어 있다. 그게 인간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고쳐버리면 아무런 후유증도 없다. 혹시 인간관계 때문에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맡기라. 후대 때문에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께 다 맡기라.
저는 이번 특별 기도회 기간 동안에 혹시 우리에게 있는 고질적인 문제, 숨겨진 문제 하나님께 털어버리라. 하나 덕이 안된다. 주님과 나와 결단내라. 하나님이 하신다. 내가 하려고 하면 힘만 들고 고생만 한다. 하나님께 맡기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셨고 지금도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여기까지 성령께서 인도하셨고 충만케 하셨다. 그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 이 축복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음을 담으라
1) 축복된 사람
제가 어릴 때에 시골 어른들이 꼬마들을 보면 “저 애는 싹수가 있다.”, “저 놈은 싹수가 없다.” 농사하시는 분은 농사를 오래 지어 보니까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이건 잘 될거구나.’.이런 말이다. 싹이 올라오기는 올라오는데 비실비실 해서 병치레 많이 하고 힘들겠구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이 그 말이다.
사람도 마음 씀씀이를 보면 싹수가 있는 사람이 있다. 어른들이 그걸 보면서 재는 어리지만 싹수가 있구나.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얼마나 살았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살아온 경험으로 이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은 잘 되겠구나!’ 자기들끼리만 봐도 저 아이는 공부 잘하겠구나! 하는 아이가 있고 재는 공부 안되겠구나! 하는 애가 있다. 그걸 말해줍니까? 말 안해준다. 또 부모도 사실 안다. 우리 애가 일류 대학 못 들어갈 것 뻔히 아는데 들어가 볼 거라고 뒤에서 밀고 난리법석하다가 나중엔 안 된다. 빨리 그것을 판단하고 다른 길로 가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예배생활, 기도생활, 중심이 있구나! 기도생활 잘하겠구나! 이런 사람이 있고, 이상하게 교회 다녀도 꼭 반대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꼭 찔러서 이렇게 말해줄 수 있습니까? 말해줄 수는 없지만 ‘저 사람은 싹수가 있구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축복된 사람은 마음 씀씀이가 다르다. 우리가 교회의 중요한 일을 할 때에 우리 마음이 거기에 다 집중하는 사람은 축복된 사람이다.
2) 마음을 담으라
그래서 우리 주님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음을 담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셨으면 마음에 담는데 마음에 담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잘 귀담아 듣고 이 말씀을 집에 가서도 또 듣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꾸 생각하면서 보면 내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이게 마음에 담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계속 묵상하다 보면 “아, 나는 이런 부분이 많이 안 되어졌구나! 고쳐야 되겠다.” 하는 것이 마음에 담는 것이다. 깨달아져야만 고쳐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이 말씀을 가지고 어느 부분에 내가 적용하면서 실천해 볼까?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묵상하면서 깨달은 것, 실천할 점, 삶에 적용할 부분 이런 것들이 마음에 담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에 계속 마음에 담게 되면 주님의 생각, 주님의 말, 행동이 나오게 된다. 꼭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으라.
3) 언약적인 한
① 약한 부분
지난번에 노회가 있었다. 노회가 끝나고 속초 회를 먹으러 가자고 아침 먹고 춘천에서 출발을 했는데 속초에 일찍 도착하게 되어서 운동을 하고 먹자고 해서 동우대에서 운동을 하게 되었다.
강원도 팀과, 성남 팀으로 나눠서 족구를 하게 되었는데 성남 팀들이 족구 팀이 원래 되어 있으니까 우리를 반드시 이길 줄 알고 연습할 때는 대충 하다가 만원 내기 하자고 하면서부터 살기가 감도는 것이다. 공격을 하는데 축구를 내가 원래 못하는데 성남 팀들이 나에게만 공격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졌다.
그런데 우리가 꼭 그 꼴이다. 우리가 실컷 당해놓고 사단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문제는 내가 못하는 것인데, 우리가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있으면 사단이 아무리 공격해도 자기가 힘든데...그래서 사실은 사단 핑계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직 복음 체질이 안되어서 당하는 것이다. 나를 강화시켜야 한다. 누구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② 영적인 힘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 왜 저와 여러분이 기도 속에서 힘을 얻어야 합니까? 왜 주님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그랬습니까? 저희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했습니까? 영적인 힘을 얻어야되기 때문에 다른 길은 없다.
③ 언약적인 한
정말 우리는 한(恨)이 있다. 우리의 옛체질 때문에 습관 때문에 사단에게 이용당하고 넘어져서 좌절에 빠질 때 많다. 그렇다면 더 이상 우리는 나약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언약적인 한을 가지고 영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
제가 고등학교 때의 본 영화 같은데 지금도 생각이 난다. 빠삐용이라는 영화인데 실화를 각색한 영화이다. 주인공이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아무리 하소연해도 안되니까 탈출을 시도해서 다행히 탈출에 성공했는데 잡혔다. 그래서 죄가 더 가중 되었다. 여러번 탈출을 시도하다가 결국은 탈출에 성공을 하게 되었다.
거기에 제게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내용이 있다. 마지막 탈출하기 얼마 전에 꿈에 재판을 받는데 재판장이 “죄를 인정하냐?” 그러니까 “저는 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누명입니다. 누군가 제게 죄를 덮어 씌웠습니다.” 그러니까 재판장이 “그래 내가 그걸 인정한다. 그런데 너는 그것보다 더 큰 죄를 졌다. 네 인생을 낭비한 죄다. 그래서 너는 이 감옥에 있어야 할 죄가 있다.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인생을 낭비한 것도 죄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과 복음에 방향 안 맞추고 살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이 살게 하신 것이 이 지역 복음화가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축복 꼭 누려야 될 줄 믿습니다.
<말씀정리>
1. 하나님은 복음가진교회 복음 전하는 교회를 통해 인생의 불치병을 해결하길 원하신다.
2. 하나님과 방향 맞는 기도는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분명히 응답하신다.
3. 축복된 사람은 말씀이 마음에 언약으로 한으로 담는다.
이런 축복 꼭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셔서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기도의 축복을 사실적으로 누리게 하시고 아버지 하나님 정말 말씀을 마음에 담고 언약으로 삼고 인도받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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